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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기독교대한감리회
층: 4
갈래: 한국 교단
분기: 1930
상위: 감리교
읽기: 45
읽기근거: 감신대에서 역사비평을 표준으로 가르치며 1930년대부터 그 전통이 있다. 다만 개별 교회 강단의 편차가 크다
권위: 52
권위근거: 감독 파송제와 연회의 대의 구조가 함께 있다. 평신도 대표가 의결에 참여하나 감독 권한이 크다
규모: 130만 안팎
정경: 66권
publish: tr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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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줄

한국 개신교에서 가장 먼저 자치 교단이 됐고, 가장 먼저 신학 논쟁을 겪었다.

## 어떻게 만들어졌나

1930년 남감리회와 북감리회가 합쳐 자치 교단을 세웠다. **한국 개신교 최초의 자치 총회**다. 장로교보다 20년 이르다.

윤치호와 신흥우 등 초기 지도층이 배출한 학교가 이화학당과 배재학당이다.

## 신학 논쟁의 시작점

1935년 아빙돈 단권 성경주석 사건이 여기서 나왔다. 번역과 집필에 감리교 신학자들이 참여했고, 장로교 총회가 이를 문제 삼았다.

「비평이 이단이던 시절」에서 다룬 그 사건이다. **한국에서 역사비평이 처음 공개 충돌한 자리가 이 교단이었다.**

감신대가 한국 진보 신학의 한 축을 이룬 배경이 여기 있다. 정경옥, 변선환의 계보다.

## 권위

감독이 목회자를 파송한다. 교회가 청빙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이 구조는 담임 개인의 교회 사유화를 막는 장치다.

여성 안수가 있다. 다만 여성 감독 배출은 오래 걸렸다.

## 강점

- 신학적 개방성의 전통. 1930년대부터 축적됐다
- 감독 파송제가 세습을 구조적으로 어렵게 만든다
- 교육 기관의 계보. 이화와 배재
- 사회 참여의 기록

## 한계

- 감독 선거를 둘러싼 갈등이 반복됐다. 금권 선거와 소송으로 교단 행정이 마비된 시기가 있다
- 신학교와 강단의 간극이 크다. 예장 통합과 같은 문제다
- 1992년 변선환 종교재판. 다른 종교에도 구원이 있다는 주장으로 감신대 학장이 출교됐다. 개방성의 전통을 가진 교단이 자기 신학자를 배제한 사건이다
- 성 소수자 쟁점에서 논의가 봉쇄돼 있고 관련 발언으로 징계 사례가 있었다

## 이어지는 항목

감리교 · 비평이 이단이던 시절 · 예장 통합 · 쟁점 앞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