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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기장
층: 4
갈래: 한국 교단
분기: 1953
상위: 개혁교회
읽기: 70
읽기근거: 역사비평을 전제로 신학 교육과 설교가 이뤄진다. 한국 개신교 교단 가운데 성서 읽기에서 가장 앞서 있다
권위: 50
권위근거: 노회와 총회의 대의 구조는 다른 장로교와 같다. 여성 안수와 소수 의견 보호에서 앞섰으나 결정 단위는 여전히 치리회다
규모: 30만 안팎
정경: 66권
publish: tr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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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줄

성서를 역사적으로 읽었다는 이유로 축출당한 사람들이 세운 교단.

## 어떻게 갈라졌나

김재준은 일본과 미국에서 공부하고 조선신학교에서 가르쳤다. 축자영감설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성서를 역사 문헌으로 읽는 방법을 학생들에게 가르쳤다.

1947년 학생 51명이 총회에 진정서를 냈다. 논쟁이 몇 해 이어졌고 1952년 총회가 그를 제명했다. 1953년 조선신학교 계열이 나와 한국기독교장로회를 세웠다.

제명 사유를 지금 언어로 옮기면 오경이 여러 자료의 편집이라는 것, 성서에 역사적 오류가 있다는 것이다. 오늘 세계 어느 신학교에서든 1학년이 배우는 내용이다.

## 성서

한신대학교가 이 전통의 중심이다. 역사비평이 전제이며 논쟁 대상이 아니다.

민중신학이 여기서 나왔다. 안병무와 서남동이 마가복음의 오클로스를 읽어 낸 작업은 1970년대 한국의 상황에서 성서를 다시 읽은 시도였다. 세계 신학계에 한국이 기여한 드문 사례다.

## 권위

여성 안수를 1974년에 결의했다. 한국 개신교에서 가장 이르다.

구조 자체는 다른 장로교와 같다. 노회와 총회가 결정한다. 회중이 직접 결정하는 단위가 별도로 있지는 않다.

## 강점

- 성서 읽기의 개방성. 한국 개신교에서 이 축의 최전선이다
- 민중신학의 생산. 자기 상황에서 신학을 만들어 낸 경험
- 민주화 과정에서의 역할. 실제로 위험을 감수했다
- 여성 안수와 소수 의견 보호의 선례

## 한계

- 규모가 작다. 30만 안팎으로 신학 인프라 유지가 쉽지 않다
- 고령화가 빠르다. 다음 세대로의 전승이 약하다
- 결정 구조는 다른 장로교와 같다. 성서 축은 열었으나 권위 축은 덜 열었다
- 신학의 언어가 학계 안에 머무는 경향. 일반 신자에게 닿는 통로가 좁다

## 역사적 과오

- **제도 개혁의 미완.** 성서 읽기에서 앞섰으나 교회 운영 구조는 나온 곳과 같은 형태를 유지했다
- **세대 전승 실패.** 1970년대와 80년대의 성취가 다음 세대의 규모로 이어지지 못했다
- **엘리트주의 비판.** 신학의 언어가 어렵고 일반 교인과의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 교단 안에서 제기돼 왔다

## 이 지형도와의 관계

좌표평면에서 기장은 오른쪽 아래에 있다. 성서 읽기는 열렸고 결정 구조는 위계로 남았다.

이것이 우연이 아니라 **비평적 성서 읽기가 제도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치른 대가**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교단으로 남으려면 교단의 형태를 갖춰야 했다.

빈 자리가 왜 비어 있는지를 설명하는 가장 가까운 사례다.

## 이어지는 항목

개혁교회 · 예장 합동 · 예장 통합 · 비평이 이단이던 시절 · 믿는생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