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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성결운동
층: 2
갈래: 개신교 갈래
분기: 1867
상위: 감리교
읽기: 25
읽기근거: 웨슬리의 성화 교리를 문자 그대로 이어받았고 성서 무오를 대체로 유지한다. 역사비평은 신학교 안에서도 제한적으로 다뤄진다
권위: 48
권위근거: 감독제와 총회를 함께 두는 구조. 감리교에서 갈라져 나왔으므로 형태를 물려받았다
규모: 1200만
한국규모: 100만 안팎
정경: 66권
publish: tr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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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줄

감리교가 성화 교리를 놓았다고 보고 갈라져 나온 흐름. 오순절의 직계 조상이다.

## 어떻게 갈라졌나

1867년 미국 뉴저지의 캠프 집회가 출발점으로 꼽힌다. 감리교가 도시화되고 중산층화되면서 웨슬리의 완전 성화 강조가 약해졌다는 문제의식이었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사이에 나사렛교회, 웨슬리안교회, 구세군, 그리스도의 교회 등 여러 교단이 이 흐름에서 나왔다.

**이 운동이 오순절로 이어졌다.** 중생 다음의 두 번째 은혜라는 구조를 그대로 가져가되, 그 증거를 성결에서 방언으로 바꾼 것이 1906년 아주사였다. 오순절 항목의 상위가 감리교인 이유가 이 중간 고리에 있다.

## 성서

성결의 체험을 성서로 확인하는 방식이다. 사도행전과 로마서 6~8장이 중심 본문이 된다.

성서 무오를 대체로 유지한다. 학문적 성서 연구의 축적은 규모에 비해 얇다.

## 구원 이해

중생 이후에 별도의 순간이 있다고 본다. 완전 성화, 온전한 성결, 두 번째 축복 등으로 불린다.

이것을 순간적 사건으로 볼 것인가 점진적 과정으로 볼 것인가를 두고 계열이 갈린다.

## 강점

- 신앙을 삶의 실제 변화와 연결한다. 관념에 머물지 않는다
- 도시 빈민 사역의 전통. 구세군이 대표적이다
- 여성 사역자 비율이 초기부터 높았다. 성결의 체험이 자격을 준다고 봤기 때문이다
- 금주와 노예제 반대 운동에 깊이 관여했다

## 한계

- 성결의 기준이 개인 도덕에 집중된다. 구조적 문제를 다룰 언어가 얇다
- 체험을 확인하는 방식이 내면화되면 자기 검열과 죄책의 순환을 만든다
- 신학 인프라가 규모에 비해 작다
- 성서 연구가 특정 본문에 집중된다

## 한국

1907년 동양선교회 선교로 시작해 기독교대한성결교회가 됐다. 서울신학대학교가 신학 교육을 맡는다.

한국에서 이 흐름은 사중복음으로 정리됐다. 중생, 성결, 신유, 재림이다. 오순절 항목에서 본 삼중축복과 구조가 유사하고, 실제로 한국 개신교 전반의 언어에 스며들었다.

1961년과 1970년대에 교단이 갈라졌다가 일부 통합됐다. 분열의 이유는 신학보다 총회 주도권이었다.

## 이어지는 항목

감리교 · 오순절 · 구세군 · 개신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