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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에큐메니컬 운동
층: 6
갈래: 쟁점이 굴러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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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서: 15
publish: tr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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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줄

각 교단이 자기 색을 유지하면서 서로 대화하자는 운동. 색을 지우자는 것이 아니다.

## 말의 내력

- 에큐메네 — 그리스어로 사람이 사는 온 땅. 로마 시대에는 제국 전체를 가리켰다
- 에큐메니컬 — 온 교회에 관한. 초기에는 전체 공의회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 헷갈리는 것 — 교단 통합 운동이 아니다. 서로 다른 채로 대화하고 협력하자는 것이다
- 한국에서 — 용공이나 혼합주의라는 비난과 함께 쓰인 시기가 길었다

## 언제 어디서

1910년 에든버러 세계선교대회가 출발점으로 꼽힌다. 선교지에서 교단별로 겹쳐 일하는 비효율이 계기였다.

1948년 세계교회협의회가 암스테르담에서 창립했다. 정교회와 개신교 주요 교단이 참여했고, 가톨릭은 회원이 아니지만 1965년 이후 협력 관계를 유지한다.

## 무엇을 했나

- 신앙과 직제 위원회. 세례와 성찬과 직제에 관한 상호 인정 논의
- 1982년 리마 문서. 세례·성찬·직제에 관한 합의 문서로, 여러 교단이 서로의 세례를 인정하는 근거가 됐다
- 1999년 가톨릭과 루터교의 칭의 교리 공동선언. 500년 논쟁의 핵심이 정리됐다
- 재난 구호와 인권 활동의 공동 대응

## 한국에서 무엇이 됐나

**1959년 장로교 분열의 표면적 쟁점이 이것이었다.** WCC 가입 여부를 두고 갈라져 합동과 통합이 됐다.

반대 논리는 두 가지였다. WCC가 용공적이라는 것과, 타 종교와 대화하면 신앙이 무너진다는 것이다.

찬성 쪽은 교단의 색을 지키면서 대화하는 것이 무엇을 훼손하느냐고 물었다.

그 뒤로 60년이 지났다. **양쪽 다 규모가 커졌고, 어느 쪽도 상대의 우려가 옳았음을 증명하지 못했다.** 실제 분열의 동력이 신학이 아니라 총회 주도권이었다는 해석이 여기서 나온다.

## 무엇이 한계인가

- 합의 문서가 많은데 현장에서 체감되지 않는다. 리마 문서를 아는 신자가 드물다
- 참여 교단의 규모가 줄고 있다. 세계 기독교에서 성장하는 쪽은 대체로 이 흐름 밖이다
- 남반구 교회들이 결정 과정에서 소외됐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 성 소수자 쟁점에서 회원 교단 사이의 격차가 커져 공동 입장을 내기 어려워졌다

## 이 지도에서

「신앙의 스펙트럼」에서 이 자리는 통째로 함께할 수 있는 범위 안에 있다. 자기 색을 유지하면서 다른 색과 함께 있겠다는 태도가 곧 이 지도가 경계선으로 삼는 기준이기 때문이다.

**배타성이 경계선이고 보수성은 경계선이 아니다.** 에큐메니컬 진영에는 신학적으로 보수적인 교단도 있다.

## 이어지는 항목

신앙의 스펙트럼 · 예장 통합 · 예장 합동 · 가톨릭 · 쟁점 앞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