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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정교회
층: 1
갈래: 세계 3대 전통
분기: 1054
상위: 초대교회
읽기: 25
읽기근거: 역사비평을 배격하지는 않지만 신학의 재료로 쓰지 않는다. 전례와 교부 주석이 해석의 기준이다
권위: 15
권위근거: 주교가 성사권을 독점한다. 공의회에 평신도가 참여할 구조적 경로가 없다. 교황 수위권이 없어 가톨릭보다 분산돼 있으나 분산의 단위는 여전히 주교다
규모: 2.2억
한국규모: 3천여 명
정경: 70인역 계열 · 제2정경과 그 이상
publish: tr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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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줄

일곱 공의회에서 멈춘 교회. 서방이 그 뒤에 더한 것을 더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곧 자기 정체성이다.

## 어떻게 갈라졌나

교과서는 1054년을 든다. 로마 교황 특사 훔베르트와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 케룰라리오스가 서로를 파문한 해다. 다만 당시 사람들은 이것을 교회의 분열로 여기지 않았다. 지역 다툼이 하나 더 생긴 정도였다.

실제로 갈라놓은 것은 1204년이다. 4차 십자군이 예루살렘 대신 콘스탄티노플을 약탈했다. 성 소피아의 제단이 부서졌고 성물이 서방으로 실려 갔다. 이후 재통합 시도는 두 번, 1274년 리옹과 1439년 피렌체에서 있었으나 동방 신자들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상호 파문은 1965년에야 철회됐다.

교리 쟁점은 필리오케였다. 성령이 아버지에게서만 나오는가, 아버지와 아들에게서 나오는가. 서방이 589년 톨레도에서 신경에 한 단어를 더했고 동방은 그 절차를 문제 삼았다. 쟁점은 문구가 아니라 **누가 신경을 고칠 권한을 갖느냐**였다.

## 성서

70인역이 구약의 기준이다. 히브리어 마소라 본문이 아니다. 신약 저자들이 인용한 것이 70인역이라는 것이 근거다.

정경 목록은 가톨릭보다 넓고, 정교회 안에서도 완전히 통일돼 있지 않다. 가톨릭 제2정경 일곱 권에 더해 에스드라스 1서, 마카베오 3서, 시편 151편, 므낫세의 기도가 들어간다. 그리스 교회는 마카베오 4서를 부록에 둔다. 슬라브 전통은 에스드라스 3서를 포함한다.

목록을 최종 확정한 전체 공의회가 없다는 사실 자체가 이 전통의 성격을 보여준다. 무엇이 성서인지를 정한 것은 문서가 아니라 **전례에서 무엇을 읽어 왔는가**였다.

## 권위

일곱 번의 에큐메니칼 공의회, 325년 니케아부터 787년 제2차 니케아까지가 최종 권위다. 그 뒤 서방이 연 공의회들을 인정하지 않는다.

교황 수위권을 거부한다.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는 동등한 자들 가운데 첫째이며 관할권을 갖지 않는다. 실제 구조는 열넷에서 열다섯 개 독립 교회의 느슨한 연합에 가깝다.

이 구조는 통일된 오류를 만들지 않는다는 장점과 분쟁을 조정할 기구가 없다는 약점을 함께 갖는다. 2018년 모스크바가 콘스탄티노플과 성찬을 끊었을 때 중재할 주체가 없었다.

## 구원 이해

테오시스, 곧 신화다. 인간이 하나님의 본질이 아니라 에네르게이아에 참여해 신적 생명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구원으로 본다. 14세기 그레고리오스 팔라마스가 정식화했다.

서방의 법정적 구도, 곧 죄책과 형벌과 대속이 중심에 없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원죄 유전 개념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아담에게서 물려받은 것은 죄책이 아니라 죽음이라고 본다. 인간론이 서방보다 덜 비관적인 이유다.

## 강점

- 부정신학. 하나님에 대해 말할 수 없는 것을 먼저 말한다. 언어의 한계를 전제로 삼는 신학이 제도로 유지된 드문 사례다
- 창조를 타락의 무대가 아니라 성사의 매개로 읽는다. 생태신학과 접점이 넓다
- 전례의 밀도. 몸과 시간과 감각을 통한 신앙 형성이 설교에 종속되지 않는다
- 원죄 유전이 없어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한 신뢰가 남아 있다

## 한계

- 성서 연구가 교부 주석의 재확인에 머무는 경향. 본문비평과 자료비평의 결과가 신학으로 들어오는 통로가 좁다
- 여성 안수가 없다. 논의 자체가 공식 의제로 오른 적이 드물다
- 민족교회주의. 1872년 콘스탄티노플 공의회가 필레티즘을 이단으로 정죄했으나 실제로는 교회 조직이 민족 단위로 굳어졌다
- 국가와의 결합. 위계가 세속 권력과 맞물릴 때 견제 장치가 없다

## 역사적 과오

- **1872년 이후의 실패.** 민족주의를 이단으로 규정해 놓고 발칸 각지에서 민족 교회 분립이 계속됐다. 선언과 실행의 간극이 그대로 남았다
- **소련기 협력.** 1990년대 공개된 문서로 러시아 정교회 고위 성직자 일부가 국가보안기관과 협력했음이 드러났다
- **1993년 코키나키스 판결.** 유럽인권재판소가 그리스의 개종 권유 처벌법을 종교 자유 침해로 판단했다. 다수 교회가 소수 종교를 법으로 억압한 사례다
- **2022년 이후.** 모스크바 총대주교 키릴이 우크라이나 침공을 축복했다. 같은 전통 안의 신자들이 서로에게 총을 드는 상황에서 위계가 국가 편에 섰다

## 한국

1900년 러시아 선교로 시작해 러일전쟁과 러시아혁명으로 두 차례 끊겼다. 지금은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청 산하 한국대교구다. 통계적 비중은 작다. 다만 개신교가 잃어버린 전례와 신비신학의 참조점으로서 의미가 있다.

## 이어지는 항목

가톨릭 · 오리엔트 정교회 · 정통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