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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통주의
역사비평을 받아들이면서 하나님을 인간 경험으로 환원하지 않으려는 시도.
말의 내력
- 신정통
- 새로운 정통. 자유주의를 넘어 종교개혁 신학으로 돌아가되 근대 이전으로 돌아가지는 않겠다는 뜻이다
- 처음 쓴 쪽
- 밖에서 붙였다. 바르트 자신은 이 이름을 좋아하지 않았고 하나님의 말씀의 신학이라 불렀다
- 다른 이름들
- 위기의 신학, 변증법적 신학이 같은 흐름을 가리킨다. 초기에는 이쪽이 더 많이 쓰였다
- 헷갈리는 것
- 정통주의로 돌아가자는 주장이 아니다. 성서 무오를 지지하지 않는다
언제 어디서
1919년 바르트의 「로마서 강해」다. 스위스 산골 목사가 쓴 주석 한 권이 자유주의 신학의 운동장에 폭탄처럼 떨어졌다는 표현이 남아 있다.
브루너, 불트만, 니버 형제, 본회퍼가 넓은 의미에서 이 흐름에 속한다. 서로 크게 다투기도 했다.
무엇을 주장했나
- 하나님은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계시하시는 분이다
- 성서는 계시 자체가 아니라 계시의 증언이다. 이 구분이 핵심이다
- 성서를 역사비평으로 읽는 것과 그것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는 것은 충돌하지 않는다
- 인간의 죄는 도덕적 결함이 아니라 자기를 하나님 자리에 두려는 구조적 성향이다
왜 중요한가
이 흐름이 성서를 정직하게 읽으면서도 신앙을 유지하는 길을 제도적으로 열었다.
자유주의는 비평을 얻고 초월을 잃었다. 근본주의는 초월을 지키려 비평을 막았다. 신정통주의는 둘을 함께 붙들 수 있다고 주장했고, 20세기 중반 세계 신학교의 표준이 됐다.
무엇이 약했나
- 언어가 어렵다. 강단과 신학교 사이에 통역이 필요했고 그 통역이 자주 실패했다
- 역사 안의 구체적 실천에 대해 말이 적다는 비판을 해방신학에서 받았다
- 하나님의 초월을 강조한 결과 인간 경험과 몸을 다루는 언어가 얇다
이 지형도에서
이 지도가 서 있는 자리와 가장 가깝다. 성서를 역사적으로 읽으면서 그것을 여전히 말씀으로 듣는 태도가 여기서 왔다.
다만 이 흐름도 결정 구조는 건드리지 않았다. 바르트가 있던 교회의 조직은 그가 오기 전과 같았다. 좌표평면의 오른쪽 위가 비어 있는 이유가 여기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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