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사조라는 한 상자에 성격이 다른 것 셋이 들어 있다. 먼저 상자를 나눠야 한다.
교단은 소속이다. 사람은 하나만 고른다.
사조는 그렇지 않다. 그런데 흔히 한 목록에 놓이는 사조들이 서로 같은 종류도 아니다. 자유주의와 여성신학을 나란히 두면 목록은 만들어지지만 이해는 되지 않는다. 한쪽은 근대 지식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대한 입장이고, 다른 쪽은 누구의 자리에서 읽을 것인가에 대한 선택이기 때문이다.
세 묶음이 서로 배타적이지 않다는 것이 핵심이다. 복음주의자이면서 여성신학을 하는 사람이 있고, 신정통주의 위에서 해방신학을 하는 사람이 있다. 한 사람이 세 묶음에서 각각 하나씩 고를 수 있다.
근대성 논쟁의 넷은 서로를 겨누며 나왔다. 앞의 것이 없었으면 뒤의 것이 없었다.
자유주의가 먼저 있었고, 그것에 반대해 근본주의가 목록을 만들었다. 신정통주의는 자유주의의 비평은 받아들이면서 그 결론은 거부했고, 동시에 근본주의의 방식도 거부했다. 복음주의는 근본주의 안에서 세상과 대화하자며 갈라져 나왔다.
이 넷은 하나의 대화다. 그래서 사람은 이 안에서 대개 하나만 고른다. 자유주의자이면서 근본주의자일 수는 없다.
두 번째와 세 번째 묶음은 그렇지 않다. 여성신학과 해방신학은 함께 갈 수 있고, 실제로 자주 함께 간다.
가로줄 하나가 한 사조이고, 그 사조가 어느 제도 안에서 실제로 활동하는지를 칸 크기로 표시했다.
가로줄이 여러 칸에 걸쳐 있다. 복음주의는 여덟 교단 중 일곱에 있다. 소속을 물어서는 그 사람의 신학을 알 수 없다.
세로줄에 여러 칸이 겹친다. 한국 장로교 한 칸에 근본주의와 복음주의와 신정통주의가 함께 있다. 같은 교단 안에서 서로 다른 신학이 부딪친다.
해방신학의 가장 큰 칸이 가톨릭이다. 개신교의 진보 신학처럼 여겨지지만 실제 무대는 라틴아메리카 가톨릭이었다.
한국 장로교 열을 세로로 읽으면 과정신학과 여성신학 칸이 거의 비어 있다.
이유는 제도에 있다. 이 사조들은 성서를 역사적으로 읽는 전제 위에 서는데, 그 전제가 목사 자격 요건과 충돌한다. 사조가 없는 것이 아니라 사조가 살 수 있는 자리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