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중이 실제로 결정하는 구조를 500년 유지했고, 그 대가로 500년 동안 죽임당한 사람들.
1525년 취리히다. 츠빙글리의 개혁이 시의회의 속도에 맞춰 진행되는 데 반발한 젊은 동료들이 서로에게 세례를 다시 주었다. 유아세례가 성서에 없다는 이유였다.
이 행위는 신학적 이견 이상이었다. 유아세례는 당시 시민권 등록의 기능을 했다. 세례를 다시 준다는 것은 교회와 국가의 결합 자체를 거부하는 선언이었다. 양쪽 권력이 즉각 반응한 이유다.
1527년 슐라이트하임 신앙고백이 원칙을 정리했다. 신자의 세례, 권징, 성찬, 세상과의 분리, 목자, 칼의 거부, 맹세의 거부. 국가 권력의 행사와 폭력을 신자의 일이 아니라고 못 박은 문서다.
1534년 뮌스터 사건이 이 흐름에 오래 남을 낙인을 찍었다. 일부 급진 세력이 도시를 장악하고 왕국을 선포했다가 진압됐다. 이후 재세례파 전체가 이 사건으로 규정됐다. 메노 시몬스가 비폭력 노선을 재정립해 흐름을 수습했고 메노나이트라는 이름이 여기서 나왔다.
산상수훈을 규범으로 직접 읽는다. 원수 사랑과 맹세 거부를 비유나 이상이 아니라 지금 지킬 규칙으로 본다.
해석 주체가 개인이 아니라 회중이다. 함께 읽고 함께 판단한다. 학문적 성서 연구의 축적은 얇다. 최근 고신대와 AMBS 등에서 학문 작업이 늘고 있으나 전통의 무게중심은 여전히 실천이다.
회중이 최종 결정권을 갖는다. 목회자를 세우고 물러나게 하는 것도 회중이다.
권징이 살아 있다. 이것이 양면이다. 공동체가 서로에게 책임을 묻는 실제 장치이면서, 동시에 배제의 도구가 되기도 했다. 아미시의 기피 관행이 그 극단이다.
제자도다. 구원을 지위의 변화보다 삶의 방식으로 본다. 믿음과 순종을 나누지 않는다.
이 때문에 이신칭의를 약화시킨다는 비판을 종교개혁 주류에게 받았다. 이 전통의 응답은 열매 없는 믿음을 성서가 믿음이라 부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제도적 존재가 미미하다. 다만 이 전통의 문헌이 한국에 미친 영향은 별개다. 존 하워드 요더의 「예수의 정치학」, 스탠리 하우어워스, 회복적 정의 담론이 한국 진보 개신교의 어휘에 들어와 있다.
요더에 관해서는 함께 기록해야 할 사실이 있다. 그가 오랜 기간 여러 여성에게 성적 가해를 했다는 것이 사후에 확인됐고, 2015년 메노나이트 교단이 공식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비폭력을 가르친 신학자의 삶에서 벌어진 일이다.
이 항목은 과오와 나란히 두어야 한다. 1527년 펠릭스 만츠가 취리히에서 익사형에 처해졌다. 다시 세례를 준 자를 물에 빠뜨린다는 조롱이었다. 1529년 슈파이어 제국의회는 재세례파를 재판 없이 사형에 처할 수 있게 했다.
가톨릭과 루터파와 개혁파가 모두 이들을 처형했다. 종교개혁기에 신앙 때문에 죽은 사람의 다수가 재세례파다. 순교자 명부 「마르티러스 슈피겔」에 4천 명 이상이 기록돼 있다.
지도 위의 자리
성서 읽기 35 — 산상수훈을 실천 규범으로 직접 읽는다. 본문의 역사적 형성 과정을 묻는 작업은 거의 하지 않는다
결정 구조 80 — 회중이 목회자를 세우고 결정한다. 성직 위계가 없고 권징도 회중이 함께 결의한다. 개신교 안에서 회중 참여가 가장 높은 계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