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회중 자치를 가장 큰 규모로 유지한 갈래. 그리고 가장 크게 갈라진 갈래.
1609년 암스테르담이다. 영국에서 박해를 피해 온 존 스미스 무리가 신자의 침례를 받아들였다. 같은 도시에 있던 메노나이트와 접촉한 것이 계기였다.
재세례파와 뿌리를 공유하지만 갈라진 지점이 있다. 비폭력과 세상과의 분리를 원칙으로 삼지 않았다. 그래서 공직에 나가고 전쟁에 참여하고 정치에 관여했다.
이 차이가 규모를 갈랐다. 재세례파는 200만에 머물렀고 침례교는 1억을 넘었다.
성서만이 권위다. 신앙고백서를 만들되 그것을 강제 기준으로 삼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다. 각 교회가 자기 신앙고백을 갖는다.
이 원칙이 계열별 격차를 만들었다. 같은 이름 아래 성서 무오를 목사 자격으로 삼는 곳과 역사비평을 가르치는 곳이 함께 있다.
개별 교회가 최종 단위다. 위에 치리 기구가 없다. 총회는 선교와 출판을 함께 하는 협의체이며 교회의 결정을 뒤집지 못한다.
정교분리 원칙을 가장 먼저 명문화한 갈래이기도 하다. 로저 윌리엄스가 1636년 로드아일랜드를 세우며 종교 자유를 법으로 보장했다. 미국 수정헌법 1조의 배경 가운데 하나다.
1889년 말콤 펜윅의 입국으로 시작했다. 기독교한국침례회가 주 교단이다.
한국에서는 회중 자치의 성격이 약하게 나타난다. 담임 중심 구조가 강하고, 세계 침례교의 정교분리 전통도 한국에서는 덜 강조된다.
지도 위의 자리
성서 읽기 38 — 계열별 편차가 매우 크다. 미국 남침례회는 무오를 고수하고 아메리칸 뱁티스트와 영국 침례교는 비평을 받아들인다. 평균값이다
결정 구조 78 — 개별 교회가 최종 결정권을 갖는다. 총회는 협의체이며 교회를 치리하지 않는다. 목사 청빙과 예산과 권징이 모두 교회 총회에서 결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