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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진신학

하나님을 존재하는 무엇으로 두지 않고, 우리를 부르는 사건으로 다시 말하려는 시도.

말의 내력

급진
라틴어 radix, 뿌리. 극단이라는 뜻이 아니라 뿌리까지 파고든다는 뜻이다
사신신학
1960년대 신은 죽었다 논쟁에서 나온 흐름. 급진신학의 앞 세대다
약한 신학
존 카푸토의 용어. 하나님을 힘이 아니라 부름으로 보는 관점
헷갈리는 것
무신론이 아니다. 유신론과 무신론이라는 선택지 자체를 다시 묻는다

언제 어디서

1960년대 미국의 사신신학이 앞 세대다. 토머스 알타이저와 윌리엄 해밀턴이 신의 죽음을 신학의 물음으로 삼았다. 당시에는 도발로 읽혔고 곧 잦아들었다.

되살아난 것은 1990년대 이후다. 자크 데리다의 해체가 종교로 방향을 틀면서다. 존 카푸토가 「하나님의 약함」과 「예수라면 무엇을 해체할까」로 이 흐름을 신학의 언어로 옮겼다. 지안니 바티모, 리처드 커니가 유럽 쪽 계보다.

무엇을 주장하나

과정신학과 가까운 자리에 있다. 둘 다 전능을 내려놓는다. 다른 점은 과정신학이 새 형이상학을 세우는 반면, 급진신학은 형이상학을 세우려는 시도 자체를 의심한다는 데 있다.

무엇이 실제로 달라지나

이 흐름의 특징은 강단이 아니라 실천 형태로 먼저 나타났다는 점이다.

피터 롤링스가 벨파스트에서 만든 이콘이 그 사례다. 예배를 강의가 아니라 연극과 설치와 침묵으로 구성했고, 확신을 주는 대신 흔드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신학이 책에서 모임의 형태로 내려온 드문 경우이며, 그래서 이 지도의 다음 층으로 이어진다.

무엇이 문제인가

한국에서

거의 없다. 카푸토의 저작 일부와 슬라보예 지젝을 통한 간접 경로가 있을 뿐이다.

과정신학과 같은 사정이다. 성서를 역사적으로 읽는 전제 위에 서는 흐름은 그 전제가 자격 요건과 충돌하는 제도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이어지는 항목

과정신학이콘신학사조자유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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