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를 공유해서가 아니라 방식을 공유해서 모인 교회들의 연결망.
2022년 4월 18일에 창립했다. 여러 작은 교회와 목회자가 참여하는 연대체이며 규모는 100명 안팎이다.
교단이 아니다. 총회도 노회도 없고 상위 치리 기구가 없다. 참여한 교회의 결정에 연대가 개입하지 않는다.
신앙고백 문서를 만들지 않았다. 이것이 이 항목을 지도에 넣는 이유다.
지금까지 본 서른 편이 같은 이야기를 반복했다.
교리 목록을 만들면 관리가 쉬워진다. 누가 안에 있고 누가 밖에 있는지 판정할 수 있다. 근본주의 항목에서 본 구조다. 그리고 그 판정 기구가 생기는 순간, 판정이 신학이 아니라 정치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예장 합동과 통합의 총회 정치가 그것이고, 김재준 제명이 그것이다.
교리를 두지 않는다는 것은 아무것도 믿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판정 기구를 만들지 않겠다는 선택이다.
대신 공유하는 것이 있다.
교리가 아니라 방식이다. 「무엇을 물어야 하는가」에서 제안한 전환이 여기에 적용돼 있다.
좌표평면에서 이 점은 금색 테두리다. 교단이 아닌 형태라는 표시다.
세로축에서 가장 위에 있다. 결정 권한이 아래에 있다는 뜻이다. 다만 이것을 성취로 읽어서는 안 된다. 규모가 작아서 가능한 구조다.
재세례파가 500년 동안 회중 자치를 유지했고, 그 대가로 규모가 200만에 머물렀다. 커지면 관리 기구가 필요하고, 관리 기구는 곧 판정 기구가 된다. 이것이 이 지도가 보여준 반복이다.
먼저 적어 둘 것이 있다. 창립 4년 차다. 「형태를 바꾼 실험들」의 타임라인에서 이머전트 빌리지는 13년, 이콘은 13년을 갔다. 지금 시점의 평가는 그 절반도 지나지 않은 상태에서 하는 것이다.
같은 잣대를 대야 한다.
갈등이 생겼을 때. 참여 교회 사이에 심각한 이견이 생기면 조정할 방법이 없다. 개신교 항목에서 지적한 그 문제다. 지금은 그 상황이 오지 않았을 뿐이다.
규모가 커지면. 100명이 서로 아는 관계에서 작동하는 것과 1,000명에서 작동하는 것은 다르다.
책임 경로. 참여 교회 안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밖에서 물을 수 있는 통로가 명확하지 않다. 상위 기구가 없다는 것의 다른 얼굴이다.
다음 세대. 교리 없이 무엇을 물려줄 것인가에 대한 답이 아직 얇다.
빈 자리에 세 점이 있다.
가나안 성도는 형태 없이 흩어져 있고, 믿는생각은 배울 자리를 만드는 쪽이고, 한국예수교회연대는 교회들을 서로 잇는 쪽이다.
셋 다 작다. 다만 앞의 서른 편이 보여준 것은 하나다. 오른쪽 위가 비어 있는 것은 그 자리가 불가능해서가 아니라 아무도 오래 머물지 못해서였다.
지도 위의 자리
성서 읽기 82 — 참여 교회들이 역사비평을 전제로 성서를 읽는다. 다만 공통 교리 문서를 두지 않으므로 이것을 규정으로 강제하지 않는다
결정 구조 92 — 상위 치리 기구가 없다. 각 교회가 자기 결정을 하고 연대는 조정하지 않는다. 지도 위에서 결정 권한이 가장 아래에 있는 형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