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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교회

회중이 뽑은 대표가 결정하는 구조를 만들었고, 그 구조로 가장 자주 갈라선 전통.

어떻게 갈라졌나

1536년 칼뱅의 「기독교 강요」 초판과 제네바 정착이 출발이다. 츠빙글리의 취리히가 먼저 있었으나 1531년 전사로 흐름이 제네바로 옮겨 갔다.

이 전통이 남긴 것은 교리보다 조직 설계다. 목사와 장로가 함께 앉는 당회, 당회 위의 노회, 그 위의 총회. 대의제 정치 구조의 초기 실험 가운데 하나다.

동시에 이 구조가 분열의 장치가 됐다. 노회와 총회는 다수결로 결정하고, 소수는 나가서 새 노회를 만든다. 한국 장로교의 계보도가 그 결과다.

성서

프린스턴 신학이 19세기에 축자영감과 무오를 정교하게 다듬었다. 찰스 하지, 벤저민 워필드의 작업이다. 오늘 한국 보수 장로교의 성서관이 여기서 왔다.

같은 전통의 다른 갈래는 반대 방향으로 갔다. 네덜란드 자유대학과 스코틀랜드의 학자들이 역사비평을 받아들였다. 미국에서는 1929년 프린스턴 재편이 갈림길이었다. 메이첸이 나가 웨스트민스터를 세웠고 그 계보가 한국 총신으로 이어진다.

한 전통이 같은 원리에서 정반대 성서관을 만들어 냈다는 사실이 이 항목의 핵심이다.

권위

장로를 회중이 선출한다. 성직자 독점이 아니다.

다만 선출 이후의 권한이 크다. 당회가 교인의 입회와 권징을 결정한다. 회중 총회는 예산과 청빙 같은 제한된 사안만 다룬다. 뽑는 권한은 있고 결정하는 권한은 위임된다.

구원 이해

하나님의 주권이 중심이다. 예정 교리가 여기서 나온다. 구원의 근거를 인간 쪽에 두지 않겠다는 의도였다.

1618년 도르트 회의가 아르미니우스 계열과 갈라서며 다섯 조항을 확정했다. 오늘 흔히 인용되는 튤립 도식은 후대의 정리다.

강점

한계

역사적 과오

한국

1885년 이후 미국 북장로교와 남장로교 선교가 주류를 형성했다. 지금 한국 개신교의 절반 이상이 이 계보다.

분열의 역사가 곧 한국 장로교의 역사다. 1952년 고신, 1953년 기장, 1959년 합동과 통합. 표면상 이유는 신사참배 처리, 성서 해석, 에큐메니컬 참여였고 그 아래에는 총회 주도권이 있었다. 현재 등록된 장로교단은 200개를 넘는다.

분기
1536
세계
8천만
한국
400만 이상
정경
66권

지도 위의 자리

성서 읽기 45 — 학문적 성서 연구의 전통이 두텁지만 무오 교리를 붙잡은 계열과 비평을 받아들인 계열로 크게 갈린다. 평균값이다

결정 구조 45 — 당회와 노회의 대의 구조. 장로를 회중이 뽑는다는 점에서 성직 독점은 아니나 결정은 치리회가 하며 회중 총회의 권한은 제한된다

이어지는 항목

개신교루터교회예장 합동예장 통합기장개신교가 처형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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