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개신교에서 가장 먼저 자치 교단이 됐고, 가장 먼저 신학 논쟁을 겪었다.
감독이 목회자를 파송한다. 교회가 청빙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이 구조는 담임 개인의 교회 사유화를 막는 장치다.
여성 안수가 있다. 다만 여성 감독 배출은 오래 걸렸다.
1930년 남감리회와 북감리회가 합쳐 자치 교단을 세웠다. 한국 개신교 최초의 자치 총회다. 장로교보다 20년 이르다.
윤치호와 신흥우 등 초기 지도층이 배출한 학교가 이화학당과 배재학당이다.
1935년 아빙돈 단권 성경주석 사건이 여기서 나왔다. 번역과 집필에 감리교 신학자들이 참여했고, 장로교 총회가 이를 문제 삼았다.
「비평이 이단이던 시절」에서 다룬 그 사건이다. 한국에서 역사비평이 처음 공개 충돌한 자리가 이 교단이었다.
감신대가 한국 진보 신학의 한 축을 이룬 배경이 여기 있다. 정경옥, 변선환의 계보다.
지도 위의 자리
성서 읽기 45 — 감신대에서 역사비평을 표준으로 가르치며 1930년대부터 그 전통이 있다. 다만 개별 교회 강단의 편차가 크다
결정 구조 52 — 감독 파송제와 연회의 대의 구조가 함께 있다. 평신도 대표가 의결에 참여하나 감독 권한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