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공의회에서 멈춘 교회. 서방이 그 뒤에 더한 것을 더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곧 자기 정체성이다.
교과서는 1054년을 든다. 로마 교황 특사 훔베르트와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 케룰라리오스가 서로를 파문한 해다. 다만 당시 사람들은 이것을 교회의 분열로 여기지 않았다. 지역 다툼이 하나 더 생긴 정도였다.
실제로 갈라놓은 것은 1204년이다. 4차 십자군이 예루살렘 대신 콘스탄티노플을 약탈했다. 성 소피아의 제단이 부서졌고 성물이 서방으로 실려 갔다. 이후 재통합 시도는 두 번, 1274년 리옹과 1439년 피렌체에서 있었으나 동방 신자들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상호 파문은 1965년에야 철회됐다.
교리 쟁점은 필리오케였다. 성령이 아버지에게서만 나오는가, 아버지와 아들에게서 나오는가. 서방이 589년 톨레도에서 신경에 한 단어를 더했고 동방은 그 절차를 문제 삼았다. 쟁점은 문구가 아니라 누가 신경을 고칠 권한을 갖느냐였다.
70인역이 구약의 기준이다. 히브리어 마소라 본문이 아니다. 신약 저자들이 인용한 것이 70인역이라는 것이 근거다.
정경 목록은 가톨릭보다 넓고, 정교회 안에서도 완전히 통일돼 있지 않다. 가톨릭 제2정경 일곱 권에 더해 에스드라스 1서, 마카베오 3서, 시편 151편, 므낫세의 기도가 들어간다. 그리스 교회는 마카베오 4서를 부록에 둔다. 슬라브 전통은 에스드라스 3서를 포함한다.
목록을 최종 확정한 전체 공의회가 없다는 사실 자체가 이 전통의 성격을 보여준다. 무엇이 성서인지를 정한 것은 문서가 아니라 전례에서 무엇을 읽어 왔는가였다.
일곱 번의 에큐메니칼 공의회, 325년 니케아부터 787년 제2차 니케아까지가 최종 권위다. 그 뒤 서방이 연 공의회들을 인정하지 않는다.
교황 수위권을 거부한다.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는 동등한 자들 가운데 첫째이며 관할권을 갖지 않는다. 실제 구조는 열넷에서 열다섯 개 독립 교회의 느슨한 연합에 가깝다.
이 구조는 통일된 오류를 만들지 않는다는 장점과 분쟁을 조정할 기구가 없다는 약점을 함께 갖는다. 2018년 모스크바가 콘스탄티노플과 성찬을 끊었을 때 중재할 주체가 없었다.
테오시스, 곧 신화다. 인간이 하나님의 본질이 아니라 에네르게이아에 참여해 신적 생명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구원으로 본다. 14세기 그레고리오스 팔라마스가 정식화했다.
서방의 법정적 구도, 곧 죄책과 형벌과 대속이 중심에 없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원죄 유전 개념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아담에게서 물려받은 것은 죄책이 아니라 죽음이라고 본다. 인간론이 서방보다 덜 비관적인 이유다.
1900년 러시아 선교로 시작해 러일전쟁과 러시아혁명으로 두 차례 끊겼다. 지금은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청 산하 한국대교구다. 통계적 비중은 작다. 다만 개신교가 잃어버린 전례와 신비신학의 참조점으로서 의미가 있다.
지도 위의 자리
성서 읽기 25 — 역사비평을 배격하지는 않지만 신학의 재료로 쓰지 않는다. 전례와 교부 주석이 해석의 기준이다
결정 구조 15 — 주교가 성사권을 독점한다. 공의회에 평신도가 참여할 구조적 경로가 없다. 교황 수위권이 없어 가톨릭보다 분산돼 있으나 분산의 단위는 여전히 주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