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파스트에서 예배를 연극으로 바꾼 모임. 답을 주지 않고 흔드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2001년 무렵 북아일랜드 벨파스트에서 시작했다. 피터 롤링스가 중심에 있었다.
교회라기보다 모임이자 공연에 가까웠다. 술집 위층에서 한 달에 한 번 모였고, 매번 주제를 정해 음악과 영상과 낭독과 침묵을 엮었다. 설교자가 앞에서 말하는 형식이 아니었다.
자기를 이렇게 소개했다. 아이콘적이고, 묵시적이고, 이단적이고, 떠오르는 중이며, 실패하는 중이라고. 실패를 정체성에 넣은 것이 이 모임의 성격을 압축한다.
이 실험이 왜 하필 거기서 나왔는지가 중요하다.
북아일랜드는 개신교와 가톨릭의 정체성이 30년 동안 폭력으로 이어진 곳이다. 1998년 성금요일 협정 직후였다. 확신에 찬 신앙이 무엇을 하는지를 눈으로 본 세대가 만든 모임이다.
확신을 흔드는 것을 목표로 삼은 이유가 여기 있다. 관념적 취향이 아니라 겪은 일에 대한 응답이었다.
복음전도 프로젝트 — 다른 종교와 무종교 공동체를 찾아가 전도하는 대신 그들에게 회심당하러 갔다. 목적은 상대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확신이 흔들리는 경험을 하는 것이었다.
사순절의 무신론 — 사순절 동안 신앙을 내려놓고 무신론 텍스트를 읽는 과정. 니체와 프로이트와 마르크스를 순서대로 읽는다. 지금도 온라인 과정으로 이어진다.
침묵과 연극 — 예배를 정보 전달이 아니라 경험의 구조로 짰다. 답을 주지 않고 끝내는 것이 원칙이었다.
2010년대에 활동이 사실상 멈췄다. 공식 해산 선언은 없다.
기록으로 남은 이유들은 이렇다.
방법론이 남았다. 사순절의 무신론과 파이로시올로지 과정이 온라인으로 이어지고 있고, 여러 나라의 작은 모임이 이 형식을 빌려 쓴다.
공동체는 남지 않았다. 이 구분이 이 항목의 요점이다.
좌표평면의 오른쪽 위를 향해 간 시도였다. 성서를 비평적으로 읽었고, 위계를 두지 않았고, 교리 목록을 만들지 않았다.
그리고 15년쯤 뒤에 멈췄다. 빈 자리가 비어 있는 이유를 설명하는 가장 구체적인 사례다. 그 자리가 불가능해서가 아니라, 거기 서면 유지 장치가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