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사건
기적은 하나님의 사랑이 사람들에게 알아보게 된 사건입니다.
자연법칙이 실제로 깨졌는지를 다투는 방식이 오래 쓰였습니다. 한쪽은 증명하려 하고 한쪽은 반증하려 하는데, 그 논쟁은 대체로 각자의 자리를 바꾸지 못한 채 끝납니다. 믿는 사람은 계속 믿고 안 믿는 사람은 계속 안 믿습니다.
성서의 기적 이야기들을 자세히 보면 다른 것이 함께 전해집니다. 누가 배제되어 있다가 다시 자리를 얻었는지입니다. 나병 환자가 나은 뒤 제사장에게 가서 공동체로 돌아가고, 혈루증 여인이 부정하다는 딱지를 떼고, 오천 명이 함께 먹습니다. 병이 낫는 것만큼 관계가 회복되는 것이 이야기의 핵심입니다.
일어났느냐만 물으면 이 부분이 통째로 지나가 버립니다. 그러면 기적은 옛날에 있었고 지금은 없는 일이 됩니다.
오늘 내 곁에서 밀려나 있던 사람이 다시 자리를 얻는 일이 생긴다면, 그것도 기적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기적을 예외적인 사건보다 사랑이 실제로 작동한 흔적으로 볼 수 있다면, 믿을 만한 기적은 생각보다 가까이 있을 것입니다.
존 도미닉 크로산 — 예수의 치유와 식탁 교제를 사회적 사건으로 읽습니다. 기적 이야기가 당시 사회에서 무엇을 뒤집었는지 보여 줍니다.
데이비드 흄 — 기적에 대한 근대적 회의를 정식화한 고전입니다. 반대편 논거를 알아야 자기 자리도 분명해집니다.
크레이그 키너 — 반대로 기적 보고를 방대하게 수집해 검토합니다. 현대 사례까지 다룹니다.
기적을 회복의 사건으로 보면 하나님나라가 조금씩 실현되는 자리와 같은 이야기가 됩니다. 예수의 활동이 무엇을 향했는지도 여기서 드러납니다. 과학과 신앙의 갈등은 줄어듭니다. 자연법칙 안에서 일어난 일이어도 기적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서의 사실성 문제와도 비슷한 구조입니다. 일어났느냐보다 왜 이렇게 전해졌느냐를 묻는 방식이 같습니다.
이 글들은 계속 고쳐 씁니다. 읽고 걸리는 데가 있으면 알려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