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트 — 어떻게 읽나
고고학은 성서의 기록과 발굴된 자료가 자주 어긋난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출애굽의 규모도, 여호수아의 정복도, 다윗과 솔로몬 왕국의 크기도 땅에서 나온 자료와는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성서를 실황 중계로 읽으면 이건 치명적인 결함입니다. 사실이 아니라면 거짓말이 되니까요. 그런데 오랜 시간에 걸쳐 다시 쓰인 기억의 편집본으로 읽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우리도 지나온 일을 기억할 때 사실을 그대로 재생하지 않고, 지금 의미가 생긴 순서대로 다시 배열합니다. 성서의 이야기들도 대체로 사건이 있고 한참 뒤에, 그 일이 왜 중요했는지 알게 된 사람들이 쓴 글입니다.
이렇게 보면 질문이 하나 더 생깁니다. 무엇이 실제로 있었느냐만이 아니라 왜 그들이 이렇게 기억하기로 했느냐입니다. 작은 부족이었던 사람들이 왜 자기들을 노예에서 해방된 백성으로 기억했는지, 나라가 무너진 사람들이 왜 세계는 좋았다는 창조 이야기를 다시 썼는지를 물으면 고백의 내용이 오히려 선명해집니다.
무엇이 있었느냐만큼 왜 이렇게 기억했느냐가 궁금해진다면, 고고학은 성서를 무너뜨리는 자료가 아니라 그 고백을 더 잘 읽게 해 주는 자료가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 핑켈스타인 — 텔아비브 대학 고고학자. 출애굽과 정복 이야기의 역사성에 가장 회의적인 입장을 대표합니다.
윌리엄 데버 — 좀 더 온건한 자리에서 고고학과 성서 서술의 관계를 다시 봅니다. 두 사람을 함께 읽으면 학계의 폭이 보입니다.
얀 아스만 — '문화적 기억' 개념으로 고대 사회가 과거를 어떻게 다시 썼는지 설명합니다. 사실성 문제를 기억 연구로 옮기는 길입니다.
성서를 기억의 편집본으로 보면 문자주의를 그대로 유지하기 어려워지고, 대신 역사비평이 필요한 도구가 됩니다. 이 편집이 왜 일어났는지 물으면 정경의 경계를 정한 일도 같은 종류의 작업이었다는 것이 보입니다. 과학과 신앙 문제도 여기서 연결됩니다. 창조 이야기를 실황 중계로 읽지 않으면 진화와 다툴 이유가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이 글들은 계속 고쳐 씁니다. 읽고 걸리는 데가 있으면 알려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