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용 — 오늘의 자리
하나님이 이 우주를 창조하셨고 지금도 돌보신다는 창조 신앙과, 진화라는 과학 이론은 서로 다른 층위의 이야기입니다.
진화는 가치중립적인 말입니다. 더 나은 존재가 된다는 뜻이 아니라 환경에 맞게 변해 왔다는 서술일 뿐입니다. 진화했다고 해서 더 훌륭해진 것도 아니고, 목적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이 말을 발전이나 개선으로 번역하는 습관 때문에 오해가 커진 면도 있습니다.
그런데 창조 신앙이 특정 분야 연구자들을 향한 혐오로 바뀌는 일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진화를 연구한다는 이유로 신앙이 없는 사람 취급을 받거나, 교회에서 자기 전공을 말하지 못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에게는 상처가 남았습니다. 문제는 과학과 신앙의 관계가 아니라 이 혐오였습니다.
과학이 밝힌 우주의 크기와 시간의 깊이를 알고 나면 창조 신앙이 줄어들까요. 더 커질 수도 있습니다. 138억 년과 수천억 개의 은하를 알고 나서 창조를 말하는 것은 6일을 말하는 것과 다른 종류의 경외입니다.
과학과 신앙이 서로의 자리를 침범하지 않고 각자의 질문에 답할 수 있다면, 둘 다 더 정직해질 것입니다.
이언 바버 — 과학과 종교의 관계를 갈등·독립·대화·통합 네 유형으로 정리했습니다. 논의의 지도를 그려 줍니다.
존 폴킹혼 — 물리학자이자 성공회 사제. 양쪽 언어를 다 쓸 수 있는 드문 저자입니다.
폴 데이비스 — 우주의 미세 조정 문제를 신학 없이 다룹니다. 신앙 밖의 자리에서 같은 경외를 말합니다.
리처드 도킨스 — 반대편 논거를 정면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가 무엇을 비판하는지 보면 우리가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도 보입니다.
과학과 신앙 문제는 성서의 사실성·문자주의에서 이미 갈립니다. 창세기를 실황 중계로 읽지 않으면 다툴 이유가 크게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기적을 자연법칙의 예외가 아니라 회복의 사건으로 보는 자리와도 이어집니다. 범재신론은 하나님이 자연법칙 바깥에서 끼어드는 분이 아니라는 언어를 제공합니다.
이 글들은 계속 고쳐 씁니다. 읽고 걸리는 데가 있으면 알려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