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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 — 어떻게 읽나

묵상

신학 연구가 이 본문이 그때 무엇을 뜻했는지를 묻는 일이라면, 묵상은 이 본문이 지금 나에게 무엇을 하는지를 보는 일입니다.

둘은 서로를 대신하지 못합니다. 연구 없이 묵상만 하면 본문을 내 형편에 맞춰 쓰기 쉽습니다. 오늘 위로가 필요하면 위로의 구절만 눈에 들어오고, 결단이 필요하면 결단의 구절만 보입니다. 반대로 연구만 하면 아무것도 붙잡지 못한 채 정보만 늘어납니다. 저자가 누구고 언제 쓰였는지는 아는데, 그래서 오늘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는 남지 않습니다.

우리 교회들의 묵상이 '오늘의 적용'으로 좁아진 데는 사정이 있어 보입니다. 본문의 여러 층을 볼 기회 자체가 적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한 본문에 여러 세대의 목소리가 겹쳐 있다는 걸 알고 나면 묵상할 거리는 줄어드는 대신 오히려 늘어납니다. 이 구절을 처음 쓴 사람의 자리, 그것을 다시 편집한 사람의 자리, 그 글을 정경으로 받아들인 공동체의 자리가 각각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중 어느 목소리 곁에 지금 내가 앉아 있는지를 물을 수 있다면, 연구는 묵상을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묵상의 재료가 될 것입니다.

참고자료 · 추천학자

유진 피터슨 — 성서를 정보로 소비하지 않고 천천히 씹어 읽는 전통(렉시오 디비나)을 현대 언어로 되살립니다.

김홍일 — 한국샬렘영성훈련원. 관상 기도와 침묵의 전통을 우리말로 소개합니다.

월터 브루그만 — 익숙한 본문을 다시 낯설게 만드는 읽기를 보여 줍니다.

이 개념과 이어지는 것

묵상은 성서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성격이 달라집니다. 고백들의 묶음집으로 보면 묵상은 여러 목소리 가운데 내 자리를 찾는 일이 되고, 역사비평은 그 목소리들을 구별해 주는 도구가 됩니다. 그리고 이 읽기는 기도와 이어집니다. 둘 다 내 감각을 어느 방향으로 돌려놓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성서역사비평기도

이 글들은 계속 고쳐 씁니다. 읽고 걸리는 데가 있으면 알려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