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천
기도는 내 언어와 감각을 하나님 쪽으로 돌려놓는 시간입니다.
구하는 기도가 오래 중심에 있었고, 응답을 경험한 이야기들도 실제로 많습니다. 그 경험을 함부로 부정할 이유는 없습니다. 동시에 교회사에는 아무것도 구하지 않는 기도의 전통도 길게 이어져 왔습니다. 관상 기도나 침묵 기도가 그렇습니다. 사막 교부들에서 시작해 지금까지 이어지는 흐름입니다.
응답 여부로만 기도를 확인하면 응답이 없는 시기에 기도 자체를 놓게 됩니다. 그런데 사랑의 방향성이 이 세계에 흐르고 있다면, 기도는 그 흐름 쪽으로 몸을 돌려 두는 일에 가깝습니다. 요청을 올려 보내는 통신보다, 이미 흐르고 있는 것에 나를 맞추는 조율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렇게 보면 확인 방법이 달라집니다. 상황이 바뀌었는지가 아니라 내가 달라졌는지를 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기도하면서 미워하던 사람이 조금 다르게 보였다거나, 급하게 결정하려던 일을 하루 미루게 되었다면 그것도 응답입니다.
기도를 마치고 나서 상황은 그대로인데 내가 조금 달라져 있다면, 그 기도는 이미 제 일을 한 것입니다.
존 프리처드 — 기도가 막힐 때의 실제 문제들을 다룹니다. 응답이 없을 때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정직한 안내입니다.
김홍일 — 한국샬렘영성훈련원. 관상 기도와 침묵의 전통을 우리말로 소개합니다.
토머스 머튼 — 20세기 관상 전통을 대중에게 연 인물입니다. 구하지 않는 기도가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시몬 베유 — 기도를 주의를 기울이는 일로 봅니다. 요청과 응답의 구도를 완전히 벗어난 자리입니다.
기도를 방향 조율로 보면 하나님을 밖에서 개입을 결정하는 분이 아니라 이미 흐르는 사랑으로 보는 자리와 이어지고, 범재신론이 그 이론적 뒷받침이 됩니다. 성령은 그 흐름의 이름이므로 기도는 성령을 알아보는 연습이 되기도 합니다. 묵상과도 짝을 이룹니다. 둘 다 내 감각을 어느 방향으로 돌려놓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확신 없이도 가능하다면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글들은 계속 고쳐 씁니다. 읽고 걸리는 데가 있으면 알려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