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사건
십자가는 끝까지 곁에 남은 사랑의 자리입니다.
제국의 처형 도구였다는 사실은 십자가를 권력에 대한 고발로 읽게 합니다. 반역자에게 쓰던 형벌이었고, 예수가 그렇게 죽었다는 것은 그가 권력에 위협으로 보였다는 뜻입니다. 이 독법은 지금도 필요합니다.
다만 고발로만 읽으면 문제가 생깁니다. 싸울 대상이 사라졌을 때 남는 것이 없고, 세상 문제를 나열하며 십자가만 지고 가라고 하면 공동체는 우울해집니다. 실제로 그렇게 지쳐 떠난 분들을 여럿 보았습니다.
십자가가 남긴 것은 적보다 그 곁에 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도망친 제자들도 있었지만 끝까지 남아 지켜본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사랑이 힘으로 이기는 대신 끝까지 함께 있는 방식을 택했다고 읽으면, 십자가는 비장한 결의보다 우정에 가까워집니다.
실패하더라도 붙잡고 부딪혀 보고 싶은 것이 하나쯤 있다면, 십자가는 이미 각자의 자리에 있을 것입니다.
마르틴 헹엘 — 고대 세계에서 십자가형이 실제로 어떤 것이었는지 자료로 보여 줍니다. 종교적 상징이 되기 전의 십자가를 알 수 있습니다.
위르겐 몰트만 — 십자가를 하나님 자신이 겪은 일로 읽습니다. 고통 앞에서 초연한 신 대신 함께 아파하는 신을 말한 대표적 저작입니다.
르네 지라르 — 희생양 메커니즘 이론으로 십자가를 읽습니다. 십자가가 희생 제의를 완성한 것이 아니라 폭로하고 끝냈다는 관점입니다.
십자가를 우정으로 읽으면 속죄를 형벌대속 하나로만 두기 어려워집니다. 진노를 대신 받는 거래보다 함께 있음이 중심이 되기 때문입니다. 부활은 그 함께 있음이 끝나지 않았다는 고백이 되고, 자기비움은 힘 대신 자리를 내주는 같은 계열의 이야기가 됩니다. 고통·신정론에서도 하나님이 밖에서 지켜보지 않고 안에서 겪으신다는 자리로 이어집니다.
이 글들은 계속 고쳐 씁니다. 읽고 걸리는 데가 있으면 알려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