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사건
속죄는 예수에게서 새로 생긴 개념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이미 오래 써 온 언어입니다.
형편이 무너진 이웃의 빚을 친족이 대신 갚아 그를 되찾아 오는 일이 있었습니다. 제사를 통해 하나님께 받아들여지는 길이 있었습니다. 속죄일에는 공동체가 함께 죄를 고백하며 그것을 염소에 실어 광야로 보냈습니다. 대신 갚아 줌, 은총으로 받아들여짐, 함께 고백함 — 이 세 갈래가 모두 속죄라는 말 안에 있었습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예수에게 일어난 일을 설명하려고 이미 손에 있던 이 언어를 가져다 썼습니다. 그러니 속죄는 예수 신앙고백의 여러 레이어 가운데 하나이고, 그 레이어도 안에 여러 결을 품고 있습니다.
오늘 형벌대속 하나만 남으면 문제가 생깁니다. 하나님이 피를 요구하는 분이 되어 사랑과 이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벌하는 그림이 신앙의 중심에 놓이면, 그 그림이 다른 관계에도 스며듭니다.
원래 이 말이 담고 있던 되찾음과 은총과 함께 고백함을 다시 볼 수 있다면, 속죄는 외워야 할 공식이 아니라 여러 방향에서 확인할 수 있는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구스타프 아울렌 — 속죄론을 세 유형으로 정리한 고전입니다. 형벌대속이 유일한 설명이 아니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야곱 밀그롬 — 레위기의 제의를 문헌학적으로 파헤칩니다. 속죄일과 아사셀 염소가 실제로 어떤 의미였는지 알 수 있습니다.
르네 지라르 — 희생 제의가 어떻게 작동했고 십자가가 그것을 어떻게 폭로했는지 봅니다.
조엘 그린 & 마크 베이커 — 형벌대속 중심의 이해를 비판적으로 검토합니다.
속죄를 여러 레이어 중 하나로 보면 십자가 이해가 넓어지고, 죄를 목록이 아니라 끊어진 관계로 보는 자리와 이어집니다. 되찾음이 중심이 되면 구원은 신분 변경보다 회복의 과정이 되고, 은총으로 받아들여짐이라는 갈래도 살아납니다. 그리고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있는 언어를 빌려 왔다는 사실은 성서를 고백들의 묶음집으로 보는 자리와 만납니다.
이 글들은 계속 고쳐 씁니다. 읽고 걸리는 데가 있으면 알려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