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계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어떤 사건 속에서 알아보게 되는 일입니다.
하늘에서 정보가 내려온다는 그림이 오래 쓰였고, 실제로 그렇게 경험한 분들의 이야기를 함부로 부정할 이유도 없습니다. 다만 성서 안에서도 계시는 대체로 뒤늦게 읽힌 일에 가깝습니다.
출애굽도 그렇습니다. 그 일을 겪을 때 사람들이 이것이 하나님의 구원이라고 알았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시간이 지나 공동체가 그 일을 다시 이야기하면서 하나님의 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예수의 제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함께 다닐 때는 계속 오해했고, 그가 죽고 난 뒤에야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시 읽었습니다.
이렇게 보면 계시는 받은 사람만 아는 특별한 정보라기보다 함께 겪은 일을 함께 해석해 온 과정이 됩니다. 이 차이가 실제로 중요합니다. 누가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순간 그 자리에 권위가 생기고 대화가 닫히는데, 해석의 과정으로 보면 그 문이 다시 열리기 때문입니다.
내 지난 시간에서 뒤늦게 읽히는 일이 있다면, 계시는 남의 것이 아니라 이미 나에게도 있는 일일 것입니다.
칼 바르트 · 파울 틸리히 — 계시를 정보 전달로 보지 않는 20세기 신학의 두 대표적 길입니다. 바르트는 하나님의 자기 계시로, 틸리히는 궁극적 관심의 경험으로 접근합니다.
폴 리쾨르 — 계시를 텍스트가 열어 주는 세계로 읽습니다. 해석학과 계시론을 잇는 자리입니다.
얀 아스만 — 공동체가 과거를 어떻게 다시 기억하며 의미를 만드는지 설명합니다. 계시를 해석 과정으로 볼 때 도움이 됩니다.
계시를 해석의 과정으로 보면 성서가 받아쓴 글이 아니라 고백들의 묶음집이라는 이해와 이어집니다. 역사비평도 계시를 지우는 도구가 아니라 그 해석 과정을 살피는 도구가 됩니다. 그리고 계시가 특정한 사람의 독점이 아니게 되면 리더십과 설교를 보는 눈이 달라집니다. 하나님에게 직접 계시를 받는 설교자는 없다는 자리가 여기서 나옵니다.
이 글들은 계속 고쳐 씁니다. 읽고 걸리는 데가 있으면 알려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