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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

설교

설교는 성실하게 준비한 해석을 나누는 노동입니다.

하나님에게 직접 계시를 받는 설교자는 없습니다. 그러니 설교자가 감당할 수 있는 자리도 거기까지입니다. 선포로만 두면 설교자가 감당할 수 없는 무게를 지게 되고, 듣는 사람도 되물을 자리를 잃습니다.

확신 없이도 설교할 수 있어야 오래 할 수 있습니다. 매주 확신을 만들어 내야 한다면 그 확신은 언젠가 연기가 됩니다. 오히려 확신 없음을 숨기지 않을 때 듣는 사람도 자기 자리를 찾습니다. 나만 흔들리는 게 아니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어떤 자료를 참고했는지, 어디까지가 학계의 이야기이고 어디부터가 설교자의 해석인지 밝히면 설교는 평가받을 수 있는 일이 됩니다. 평가받을 수 있다는 것이 설교를 세뇌에서 멀어지게 합니다. 재미있었는지, 창의적이었는지, 실천할 것이 남았는지도 물을 수 있습니다.

회중이 되묻고 다시 해석할 수 있다면, 설교는 일방적인 전달을 넘어설 것입니다. 그러려면 회중이 설교를 준비해 보는 자리도 있어야 합니다.

참고자료 · 추천학자

프레드 크래독 — 권위로 선포하는 설교에서 함께 발견해 가는 설교로 옮기자고 제안합니다. 귀납적 설교론의 고전입니다.

월터 브루그만 — 설교를 새로운 세계를 상상하게 하는 언어로 봅니다.

폴 리쾨르 — 본문이 열어 주는 세계라는 개념으로 해석과 설교를 잇습니다.

이 개념과 이어지는 것

설교를 노동으로 보면 목사를 신분이 아니라 전문성을 갖춘 노동자로 보는 자리와 직결됩니다. 계시를 특정한 사람이 독점하는 정보가 아니라 함께 해석해 온 과정으로 보는 것도 여기서 이어집니다. 성서를 여러 목소리의 묶음집으로 보면 설교할 거리가 오히려 늘어나고, 역사비평은 무엇을 참고했는지 밝힐 수 있게 해 주는 도구가 됩니다.

목사계시성서역사비평리더십

이 글들은 계속 고쳐 씁니다. 읽고 걸리는 데가 있으면 알려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