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범재신론은 세계가 하나님 안에 있고, 하나님은 세계보다 크시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하나님을 세계 밖에 두는 전통적 유신론은 초월을 잘 지켜 냅니다. 하나님은 세계에 매이지 않는 분이고, 그래서 세계가 무너져도 소망이 남습니다. 반대로 하나님과 세계를 같다고 보는 범신론은 친밀함을 잘 담아냅니다. 하나님이 멀리 계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범재신론은 그 둘을 한자리에 두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사랑이라는 방향성이 세계 전체에 흐르고 있되, 그 흐름이 세계에 갇히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자리에 서면 고통을 보는 눈이 달라집니다. 밖에 계신 분이라면 왜 개입하지 않으시냐는 질문이 계속 남습니다. 개입할 수 있는데 안 하신다면 사랑이 의심스럽고, 못 하신다면 능력이 의심스럽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안에서 함께 겪으시는 분이라면 질문 자체가 옮겨 갑니다. 왜 막지 않으셨느냐가 아니라, 이 안에서 무엇이 여전히 움직이고 있느냐를 묻게 됩니다.
하나님이 바깥에서 지켜보다 개입을 결정하는 분이 아니라 안에서 함께 앓으며 방향을 잃지 않는 분으로 느껴진다면, 이 언어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캐서린 켈러 — 과정신학과 범재신론을 현대 언어로 풀어냅니다. 창조를 무에서의 창조가 아니라 깊음에서의 창조로 다시 읽습니다.
존 캅 & 데이비드 그리핀 — 과정신학 입문서. 화이트헤드의 철학을 신학으로 옮긴 표준 참고서입니다.
필립 클레이턴 — 범재신론을 과학과의 대화 속에서 정리합니다.
범재신론은 하나님을 어떻게 놓느냐의 이론적 자리이고, 여기가 정해지면 아래가 연쇄로 움직입니다. 기도는 밖에 계신 분께 개입을 요청하는 일에서 이미 흐르는 방향에 나를 맞추는 일로 바뀝니다. 고통·신정론은 "왜 개입 안 하시나"에서 "이 안에서 무엇이 움직이나"로 질문이 옮겨 갑니다. 성령은 그 흐름의 이름이 되고, 과학과 신앙의 갈등도 줄어듭니다. 하나님이 자연법칙 바깥에서 끼어드는 분이 아니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 글들은 계속 고쳐 씁니다. 읽고 걸리는 데가 있으면 알려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