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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성육신

성육신은 하나님의 사랑이 특정한 자리에서 몸을 얻는 일입니다.

위에서 내려오셨다는 오랜 그림이 있고, 그 그림은 낮아지심의 깊이를 잘 담아냅니다. 높은 자리를 버리고 가장 낮은 곳으로 오셨다는 이야기에는 힘이 있습니다.

다만 위와 아래가 전제되면 신앙의 언어 전체에 위계가 스며들기 쉽습니다. 하늘과 땅, 거룩과 세속, 영과 육이 자연스럽게 서열이 됩니다. 성육신을 신성이 특정한 자리에 접속하고 체화되는 일로 함께 읽으면 그 부담이 덜어집니다. 위아래 대신 여기와 저기가 남기 때문입니다.

소통을 위해 기꺼이 에너지를 들이는 일이라고 해도 좋겠습니다. 상대가 알아들을 수 있는 자리까지 내려가 그 언어로 말하는 일 말입니다. 실제로 요한복음이 로고스라는 당대 철학 용어를 가져다 쓴 것도 그런 시도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일이 예수에게서 가장 분명하게 일어났다고 고백합니다. 다만 그 한 번으로 닫히는 것도 아닙니다. 내가 있는 자리에 무엇이 접속하고 있는지 물을 수 있다면, 성육신은 기념할 사건이면서 동시에 살아 볼 방식이 될 것입니다.

참고자료 · 추천학자

존 카푸토 — 신성이 특정한 자리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라는 관점을 급진적으로 밀고 갑니다.

폴 앤더슨 — 요한복음의 로고스가 어떻게 당대 철학에서 왔는지, 그리고 왜 그것을 가져다 썼는지 다룹니다.

존 캅 — 신성이 세계와 함께 되어 간다는 관점에서 성육신을 반복 가능한 일로 봅니다.

이 개념과 이어지는 것

성육신을 접속과 체화로 보면 하나님과 세계 사이의 위계가 완화되고, 범재신론과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성령은 그 접속이 지금도 일어나는 방식이 되고, 예수는 그 일이 가장 분명하게 일어난 자리가 됩니다. 위계가 빠지면 교회리더십을 보는 눈도 달라집니다. 거룩한 자리와 세속의 자리를 나누던 습관이 흔들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범재신론성령예수교회리더십

이 글들은 계속 고쳐 씁니다. 읽고 걸리는 데가 있으면 알려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