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천
예수가 마지막으로 한 일은 함께 먹는 일이었습니다. 그 상에는 곧 배신할 사람도 앉아 있었습니다.
성찬은 그 식사를 반복하면서 함께 먹는 일이 공동체에 무엇을 하는지 보는 자리입니다. 빵과 잔에 무엇이 실제로 일어나는지를 두고 수백 년 논쟁이 있었습니다. 화체설, 공재설, 기념설이라는 이름으로 정리되는 논쟁입니다. 그것은 당시 교회의 정체성을 가르는 중요한 문제였고, 사람들이 목숨을 걸 만한 문제이기도 했습니다.
그때의 무게를 존중하는 일과, 오늘도 같은 기준으로 서로를 나누는 일은 다른 문제입니다. 지금 한국 교회에서 이 교리 차이로 갈라서는 경우는 드뭅니다. 대신 다른 기준이 작동합니다. 세례를 받았는지, 등록 교인인지, 어느 교단인지 같은 것들입니다.
예수의 식탁에는 그런 기준이 보이지 않습니다. 곧 배신할 사람과 도망갈 사람들이 함께 앉아 있었습니다.
누구를 그 상에 앉힐 것인가를 먼저 물을 수 있다면, 성찬은 교리를 확인하는 예식이면서 동시에 환대의 연습이 될 것입니다.
존 도미닉 크로산 — 예수의 식탁 교제를 사회적 사건으로 읽습니다. 누구와 먹느냐가 그 시대에 무엇을 뜻했는지 보여 줍니다.
게르트 타이센 — 고린도 교회의 성찬 갈등을 계급 문제로 분석합니다. 바울이 왜 화를 냈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알렉산더 슈메만 — 정교회 쪽에서 성찬을 세계 전체를 향한 감사로 확장합니다.
성찬을 환대의 연습으로 보면 예배의 다른 순서들도 누구를 위한 것인지 묻게 되고, 교회를 규모나 소속이 아니라 서로에게 무엇을 하는가로 보는 자리와 이어집니다. 속죄와도 만납니다. 성찬이 예수의 죽음을 기억하는 자리이므로 그 죽음을 어떻게 이해하느냐가 이 예식의 의미를 정하기 때문입니다. 젠더와 종교에서 누가 이 자리에 있어도 되는지의 문제와도 직결됩니다.
이 글들은 계속 고쳐 씁니다. 읽고 걸리는 데가 있으면 알려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