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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용 — 오늘의 자리

정치와 신앙

정치적 입장이 다른 사람과 교회에서 친구가 될 수 있는가 하는 물음이 있습니다. 쉽지 않습니다. 페이스북이 전쟁터가 된 지 오래이고, 교회 안에서도 사정은 비슷합니다. 선거철이면 예배 분위기부터 달라집니다.

예수의 활동을 정치와 무관하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성전 체제와 로마 제국 아래에서 살았고, 하나님나라라는 정치적 언어를 썼고, 결국 정치범으로 처형되었기 때문입니다. 신앙은 사적인 것이라는 말은 그 자체로 하나의 정치적 입장입니다.

다만 특정 정당이나 정책을 신앙의 결론으로 두면 그 결론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신앙까지 의심받게 됩니다. 이것은 보수 쪽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진짜 기독교라면 이 편이어야 한다고 말하는 순간, 그 문장의 구조는 어느 쪽에서 나오든 같습니다.

내용에 합의하기 어려울 때는 태도에 합의하는 편이 낫습니다. 교리는 없어도 모임의 에티켓은 정할 수 있습니다. 상대의 결론을 바꾸려 하지 않기, 상대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먼저 듣기, 사람과 입장을 구분하기 같은 것들입니다.

서로 다른 결론을 가진 채로도 같은 상에 앉을 수 있다면, 그 자체가 이미 정치적인 실천일 것입니다.

참고자료 · 추천학자

리처드 호슬리 — 예수와 초기 기독교를 로마 제국이라는 정치적 조건 안에서 읽습니다.

존 하워드 요더 — 예수의 정치성을 비폭력의 자리에서 읽습니다. 정치 참여와 거리 두기 사이의 오래된 논쟁을 다룹니다.

샹탈 무페 — 갈등을 없애는 대신 적대를 경합으로 바꾸는 정치 이론입니다. 다른 결론을 가진 채로 함께 사는 법에 관한 자료입니다.

김진호 — 한국 개신교와 정치의 관계를 사회사적으로 다룹니다.

이 개념과 이어지는 것

정치 문제에서 양쪽을 같은 잣대로 재는 태도가 가장 강하게 시험받습니다. 원죄를 확률로 보면 내 진영을 예외로 두지 않게 되고, 악·사탄을 구조로 보면 상대를 악으로 부르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나라가 다른 질서를 말하는 정치적 언어였다는 자리, 공동체·커뮤니티에서 거리를 조절하는 방식과도 이어집니다.

원죄악·사탄하나님나라공동체·커뮤니티

이 글들은 계속 고쳐 씁니다. 읽고 걸리는 데가 있으면 알려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