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어둠
종말론은 세상의 끝날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성서의 묵시문학은 대체로 제국의 압박 아래에서 쓰였습니다. 다니엘서도 요한계시록도 그렇습니다. 지금 이 질서가 마지막이 아니라는 선언이 그 안에 있었습니다. 억눌린 사람들의 언어였다는 뜻입니다. 로마가 영원할 것 같은 시절에 로마가 끝난다고 말하는 일에는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같은 이야기가 공포로 쓰이면 사람을 묶습니다. 곧 끝나니 지금은 참으라거나, 준비 안 된 사람은 남겨진다는 식으로 쓰일 때가 그렇습니다. 이 방식은 사람을 순응하게 만들고, 지금 여기의 문제를 미루게 합니다. 원래 저항의 언어였던 것이 정반대로 쓰이는 셈입니다.
희망으로 쓰이면 사람을 움직입니다. 지금 이 질서가 영원하지 않으니 다르게 살아 볼 수 있다는 뜻이 되기 때문입니다. 바꿀 수 없어 보이는 것도 언젠가 바뀐다면, 오늘 작은 것을 시도해 볼 이유가 생깁니다.
같은 종말론을 어느 쪽으로 읽을지는 결국 우리가 정합니다. 그리고 그 선택이 공동체의 분위기를 만듭니다.
위르겐 몰트만 — 종말론을 미래의 예고가 아니라 현재를 여는 희망으로 읽습니다. 20세기 종말론 논의의 전환점입니다.
존 콜린스 — 묵시문학이 어떤 상황에서 왜 쓰였는지를 정리한 표준 연구입니다.
엘리자베스 쉬슬러 피오렌자 — 요한계시록을 저항 문학으로 읽습니다. 공포의 예언서라는 통념을 뒤집습니다.
바바라 로싱 — 휴거 신앙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왜 문제인지 다룹니다.
종말론을 어느 쪽으로 읽느냐가 천국·지옥의 언어를 정하고, 하나님나라가 미래의 장소인지 지금 시작되는 것인지도 여기서 갈립니다. 부활은 죽음이 마지막이 아니라는 같은 계열의 고백입니다. 그리고 지금 질서가 영원하지 않다는 자리는 돈과 자본주의·정치와 신앙에서 작은 시도를 해 볼 근거가 됩니다.
이 글들은 계속 고쳐 씁니다. 읽고 걸리는 데가 있으면 알려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