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어둠
천국과 지옥에 관한 성서의 언어는 생각보다 늦게, 그리고 조금씩 형성되었습니다.
히브리 성서에는 사후 상벌의 그림이 뚜렷하지 않습니다. 스올이라는 말이 나오지만 좋은 사람도 나쁜 사람도 함께 가는 곳에 가깝습니다. 제2성전기를 지나면서 부활과 심판의 언어가 자리를 잡고, 신약에 이르러 좀 더 분명해집니다. 지금 우리에게 익숙한 이미지들은 상당 부분 후대 문헌과 중세 이후의 상상에서 왔습니다. 단테의 지옥도 그중 하나입니다.
죽은 뒤의 장소로 확정해 두면 신앙이 사후 보험처럼 됩니다. 여기서 어떻게 사는지가 뒤로 밀리고, 누가 어디로 가는지를 따지는 일이 신앙의 중심이 됩니다. 그리고 그 판정은 대체로 사람이 하게 됩니다.
이 언어들이 본래 하려던 일은 지금의 삶에 무게를 주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어떻게 사는지가 아무 상관없지 않다는 선언이었습니다. 예수의 심판 비유들도 대체로 지금 누구를 돌보았는지를 묻습니다.
오늘 죽으면 갈 자신이 있느냐는 질문보다, 오늘 누구와 어떻게 살고 있느냐를 먼저 물을 수 있다면 그 언어는 다시 제 일을 할 것입니다.
바트 어만 — 천국과 지옥 개념이 언제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추적합니다. 대중적으로 잘 정리된 책입니다.
톰 라이트 — 죽어서 천국에 간다는 이해가 성서적이지 않다는 논지를 폅니다. 보수적 자리에서도 같은 지적이 나온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한스 우르스 폰 발타사르 —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소망해도 되는가를 정면으로 다룹니다.
천국·지옥을 지금의 삶에 무게를 주는 언어로 보면 구원이 사후 자격이 아니라 지금의 방향이 되고, 하나님나라와 구분됩니다. 종말론을 공포로 읽을지 희망으로 읽을지가 여기서 실제 효과를 냅니다. 죽음의 자리에서 이 언어가 위로가 되는지 압박이 되는지도 시험받습니다. 타종교 문제와도 만납니다. 누가 어디로 가는지를 우리가 판정할 수 있는가 하는 물음이기 때문입니다.
이 글들은 계속 고쳐 씁니다. 읽고 걸리는 데가 있으면 알려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