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천
영성은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추구하는 모든 과정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답다는 것이 무엇인지 자체가 해석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하나의 진짜 영성이라는 말은 성립하기 어렵습니다.
그 길은 최소한 세 갈래로 나 있습니다. 개인의 내면을 깊게 하는 길, 이웃에게 나아가는 길, 세계의 구조를 바꾸려는 길입니다. 어느 길을 걷느냐는 그 사람의 기질과 형편과 시기에 따라 다릅니다. 같은 사람도 시기마다 다른 길에 서 있습니다.
어느 하나만 순수한 영성이라고 부르는 순간 다른 길을 걷는 사람이 밀려납니다. 그리고 이것은 보수 쪽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자기 비움이나 반자본주의를 유일한 영성으로 두는 것도 같은 태도입니다. 진짜 기독교는 이래야 한다고 말하는 순간, 그 문장의 구조는 어느 쪽에서 나오든 같습니다.
내가 걷는 길이 다른 길을 밀어내고 있는지 물을 수 있다면, 영성은 넓어지는 쪽으로 갈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지금 어느 길에 서 있는지 알면, 부족한 쪽으로 한 걸음 옮겨 볼 수도 있습니다.
알리스터 맥그라스 — 종교개혁 시대의 다양한 영성 흐름을 정리합니다. 하나의 개신교 영성이 있었던 것이 아님을 보여 줍니다.
필립 셀드레이크 — 그리스도교 영성사를 통사로 다룹니다. 시대마다 무엇을 영성이라 불렀는지 볼 수 있습니다.
한병철 — 성과사회에서 자기 착취가 어떻게 자발적으로 일어나는지 분석합니다. 영성이 자기 계발로 흡수되는 지점을 점검할 때 유용합니다.
영성을 여러 갈래로 보면 양쪽을 같은 잣대로 재는 태도가 여기서 훈련됩니다. 내 진영의 독점도 독점이기 때문입니다. 기도·묵상은 첫째 길의 실천이고, 공동체·커뮤니티는 둘째 길, 정치와 신앙·돈과 자본주의는 셋째 길과 이어집니다. 자유와도 만납니다. 하나의 영성에 갇히지 않아야 다른 길을 시도해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글들은 계속 고쳐 씁니다. 읽고 걸리는 데가 있으면 알려 주세요.